[96호] 수학자, 피타고라스 (기원전 570년경-기원전480년경, 그리스 사모스)

안녕하세요 MATHING의 슈임.중학교 3학년 2학기 수업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정리가 결점이 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입니다.명화 속 불가사의한 수학 이야기와 행복한 교과서, 수학자를 만나다 책을 참고해 수학자 피타고라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대 유명한 철학자나 수학자들이 모여 있는 그림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다소음 그림은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1508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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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감상해 볼까요?실내가 넓고 밝은 건물 안에 사람들이 제각기 무리를 지어 모여 있습니다. 이들은 유난히 함께 서양 문명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학자들이지만 무려 54명이나 본인이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 화면 가운데 인물은 고대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두 철학자 옆에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가 여러 자세를 취하고 있어요. 당시 르네상스인들은 철학계의 두 거장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존경하고 두 학자의 상반된 이론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라파엘로는 이상적인 개취의 플라톤과 현실적인 개취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성을 절묘하게 대립시키고 있습니다. 이상주의자 플라톤은 열정을 뜻하는 붉은색을, 이성적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재와 평정의 색깔인 푸른색 옷을 입혔습니다. 또한 두 사람의 상반된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두 철학자를 중앙에 두고 그의 제자들을 좌우 대칭으로 하도록 배치하였습니다. 철학이 큰 두 편인 플라톤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대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에서도 역시 다른 대칭을 찾을 수 있습니다. 건물 좌우 벽을 보세요. 칠현금을 든 아폴론상과 지혜를 상징하는 방패와 창을 든 아테네 신상이 좌우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두 남녀의 신은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아테네학당이 걸작으로 평가받은 마치 숨은 찾기처럼 위대한 학자들을 추리하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설명에열중한제자들,그소음으로사람들과함께질문놀이를하면서철학적물소음을내는학자는소크라테스,망토를깔고계단위에누워있는사람은디오게네스입니다.    이 밖에도 철학자들을 볼 수 있는데 화면 아래 왼쪽에 피타고라스 그룹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피타고라스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큰 책에 뭔가를 더 쓰고 있습니다. 어린 제자가 선생님 발밑에서 손으로 정성스럽게 칠판을 받치고 있습니다. 칠판에는 피타고라스의 기본적 수론인(1+2+3+4=10) 도표가 로마숫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잘 안 보이는데…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로마 숫자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수학자 피타고라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피타고라스는 그리스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기원전 57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 시대는 다양한 신들과 초능력의 미신을 숭배하는 시대였습니다. 명문 소가족 출신으로, 피타고라스의 부모는 아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길 원했습니다.젊은 시절 피타고라스는 가면리스와 아낙시만드로스 밑에서 천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는데 그의 선생들은 피타고라스에게 이집트로 유학 가서 넓은 문물을 배울 것을 권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23세가 되던 기원전 547년경에 이집트에 도착해 20년 이상 머물면서 기하학을 포함한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습니다. 피타고라스 정리라고 이름 붙여진 이론을 이집트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할 것이다.    이집트에서 많은 공부를 하고 돌아온 피타고라스는 고향에서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연구하기를 원했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어요. 다시 고향을 떠난 사람이 가멘리아 남부의 큰 도시 크리톤으로 이주했는데 거기서 행운의 여신을 만봉인으로 삼았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최고의 부자이며 역사상 가장 힘있는 인물이라는 미로의 후원을 받습니다.

미로 : 매우 강한 힘을 가진 사람으로 올림픽에서 자신이 여러 번 우승한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체육뿐만 아니라 철학과 수학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데서 사모스 섬의 현인이라고 불린 유명인으로서 아마 피타고라스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로는 자기 소유의 건물을 내주고 피타고라스로 학교를 열게 했습니다

학교를 설립한 피타고라스는 수학, 음악, 철학, 천문학, 그리고 그 학문과 종교와의 관계를 가르치고 연구했습니다. “학교가 개교하자, 무려 600명이나 되는 우수한 사람들이 학교를 찾았다고 하는데, 그 중에는 밀로의 딸이자 나중에 피타고라스의 아내가 된 테아노도 있었습니다” 그 무렵 피타고라스는 60세였고, 그들은 많은 와인이 이혼했다고 합니다. 바라다 전 490년경, 피타고라스 학교는 최고의 명성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어른을 존경하듯이 배우고, 배움을 통해 정신을 개발하고, 평등 사상의 정의를 강조했습니다. 침착함과 온화함이 근본적인 정신이었지만, 피타고라스 학교의 학생은 친밀한 우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수를 매우 사랑했고 만물의 근본은 수라고 했습니다. 수를 만물의 원리로 삼은 것은 수학과 발달에 좋은 자극제가 되었고, 수를 써서 모든 관계를 설명하려는 성급함 때문에 수의 신비주의에 빠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우주를 ‘질서’라는 뜻을 가진 코스모스(cosmos)라고 이름 붙인 것도 그 때문이며, 철학자(philosopher)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하교의 교육이념으로 삼았습니다. 수학을 영혼의 정화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기하학, 수론, 측량술, 계산술과 같은 기술 단계를 넘어 이론으로 발전시켰는데, 바로 여기에 유명한 ‘피타고라스 정리’가 있습니다.    다음 호의 이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대해서 계속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